덕수이씨종보 영인본 간행

대종회에서는 종회창립 50주년을 기념하..

   
     
   
 
 

불초한 제가 대종회장에 취임하게 되어 당황스럽고 한편 송구합니다. 우리 문중이 대동보를 만들고 각종 문헌을 발간하는 등 공동체로서 눈뜨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말, 18세기 초엽이라 생각합니다. 1712년(숙종 38) 「壬辰譜」가 처음 나오고 그 이전 1682년(숙종 8) 「德水李氏世稿」, 1686년(숙종 12) 「德水李氏世系列傳」이 출간되었으니 이때부터 우리 문중의 각 파가 서로 찾고 일가로서의 우의를 다져나가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덕수이문은 개성 8백년동안 우리나라 역사무대에서 주류를 형성해온 명문입니다. 도학(道學)의 율곡선생, 무열(武烈)의 충무공을 위시하여 동악ㆍ택당공등 문원(文苑)의 종백(宗伯)들이 끊이지 않고 배출되어 우리 역사를 앞장서 이끌어 왔습니다. 특히 조선조 중ㆍ후기 3백년간에는 수많은 名卿將相들이 잇따라 출현하여 나라안의 갑족(甲族)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우리 5만 종인들이 뒤돌아보고 앞날을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 같은 지난 역사속의 성세(盛世)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난날 성세 속에서 우리가 간과(看過)해서는 안될 것은 우리 선현들이 보여주었던 도덕적 책무와 희생정신입니다. 요즘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그 말이 생겨난 서양에서 뿐 만 아니라, 동양 특히 우리나라 역사에서 더욱 고양(高揚)되었던 도덕적 가치입니다. 충무공이 4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새롭게 평가되고 세계적으로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율곡선생이 4백년간 계속 도학의 종장(宗匠)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분들의 높은 벼슬이나 학문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신의 안위(安危)를 돌보지 않고 나라에 몸 바치신 이들 선현들의 숭고한 공익적 책무와 희생정신에 있는 것입니다.

이밖에 우리문중의 많은 선현들은 이민족의 외침(外侵)이나 국난의 고비마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수범을 보였습니다. 임진난 당시 충무공의 진중에는 조카 묵헌공(?軒公) , 강민공(剛愍公)도 함께 있었으며 우계공(雨溪公)은 전라감사로서 경상ㆍ충청의 연합군을 지휘했습니다. 옥산공(玉山公)도 괴산군수로서 왜군과 조우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강민공은 이후 1627년 정묘호란때 의주부윤으로 사촌동생 藎과 함께 의주성이 떨어지자 분사(焚死)하였습니다. 이밖에 1728년(영조4) 李麟佐의 난때 순국한 충숙공(忠肅公 휘 弘茂)과 충민공(忠愍公 휘 鳳祥)을 필두로 일제의 침략 강점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에 몸바쳐 순국한 수많은 선현들이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 문중이 함께 뒤돌아보고 5만 종인들과 후손들에게 펼쳐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같은 우리 선현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입니다. 우리 선현들이 얼마나 현달했고 부귀공명을 누렸느냐하는 복고적인 회상이 아니라 그들이 나라가 위난(危難)에 처했을 때 어떻게 목숨을 바쳐 헌신했느냐 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알리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은 형세가 부쳐 감당할 수 없다 해도 언젠가 기회가 오면 우리 문중에서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 나라를 구하고 사회발전에 헌신하는 도덕적 책무가 무엇인가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