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이씨종보 영인본 간행

대종회에서는 종회창립 50주년을 기념하..

   
 
 
경상지역 유적지

유적지명
옥계서원 (玉溪書院)
주소
경남 합천군 봉산면 술곡리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60호
율곡 이이의 유물인 『격몽요결 』과 『해동연원록 』등을 소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이(1536∼1584)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이다.

옥계서원은 영조 3년(1725)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4㎞ 정도 떨어진 향옥동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을 고종 6년(1867)에 마을 동쪽 200m 지점에 다시 세웠다

유적지명
병암서원(屛巖書院)
주소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
지정번호
 
병암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창건되었으며, 1702년(숙종 28)에 사액(賜額)되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毁撤)되었다.

1882년(고종 19)에 청운동으로 이건(移建)하였고, 1928년 구평동으로 재이건(再移建)하였으며, 1974년에 현재의 위치로 3차 이건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우 등이 있다.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사우에는 이이(李珥)와 김장생(金長生)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3월 상정일(上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유적지명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觀音浦李忠武公戰歿遺墟)
주소
경남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산125
지정번호
사적 232호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선조 31년(1598) 조선과 명나라의 수군이 도망가는 왜적들을 무찌르다 관음포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적의 탄환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이에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부르며, 마주보는 해안에는 이락사가 있다.

그 후 순조 32년(1832)에 왕명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단과 비, 비각을 세웠다.

1965년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와 ‘이락사’라는 액자를 경내에 걸었다.

이락사와 관음포 앞바다는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의 옛터일 뿐 아니라 전쟁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유적지명
한산도이충무공유적(閑山島李忠武公遺蹟)
주소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875
지정번호
사적 113호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선조 25년(1592) 이곳에 제승당을 짓고, 26년(1593)부터 30년(1597)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영조 15년(1739)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유적지명
남해충렬사(南海忠烈祠)
주소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지정번호
사적 233호
남해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묘비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 2년(1661)에 송시열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유적지명
통영충렬사 (統營忠烈祠)
주소
경남 통영시 명정동 213외
지정번호
사적 236호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선조 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지었으며, 현종 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지어 보낸 현판을 받았고,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걸쳐 2번씩 제사를 지내왔다.

사당에는 본전, 정문, 중삼문, 동·서재실과 강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사당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 7년(1681)에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비이며 사당의 뒷편에는 역대 수군통제사들의 비 29기를 세웠다

유적지명
통제영지 (統制營址)
주소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외
지정번호
사적 402호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유적지명
충렬묘비(忠烈廟碑)
주소
경남 통영시 명정동 213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113호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충절과 업적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운 비로, 현재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사 내 비각에 놓여 있다.

비는 각 면이 평평하게 손질된 길쭉하고 네모진 형태이다.

비문은 광해군 6년(1614) 좌의정 이항복이 지었던 여수 ‘이충무공대첩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내용 중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명’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충렬사의 이충무공 신당에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지명
착량묘(鑿梁廟)
주소
경남 통영시 당동 8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13호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

’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쫓겨 달아나다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 좁게 이어진 협곡에 이르러 돌을 파서 다리를 만들며 도망한데서 붙인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선조 31년(1598)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이를 애통하게 여긴 이 지방 사람들이 그의 충절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착량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정성껏 그를 모셔온 것이 이 사당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고종 14년(1877) 그의 10대손인 이규석이 통제사로 있을 때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쳐 지었고 호상제를 지어 지방민들의 자제를 교육하였다.

1979년 동재를, 1980년 고직사를 새로 지어 서원 양식을 갖추었다.

또 다른 사당인 충렬사에서는 봄과 가을로 향사를 하고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11월 19일 충무공이 돌아가신 날을 추모하는 기신제(忌宸祭)를 지내고 있다

유적지명
옥포성(玉浦城)
주소
경남 거제시 옥포동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104호
옥포는 선조 28년(1592) 이순신 장군이 옥포에 머무르고 있던 왜적의 배 300여척 가운데 26척을 격파시킨 최초의 해전인 옥포대첩이 일어난 곳이다.

현재 도시화되는 과정에 의해서 성은 거의 훼손되어 성벽의 일부와 축대 등만이 남아있다

유적지명
장목진객사(長木鎭客舍)
주소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219-18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189호
조선시대 거제부 소속 7개 진영중의 하나였던 장목포진의 관아건물이다.

세워진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장목리 동구에 있던 것을 정조 9년(1785)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 지었다고 한다.

한려해상의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진해만 일대를 방어하고 대한해협을 바라보기 위한 전략의 요충지였던 이곳은 항상 장수들이 모여 이곳에서 전략을 의논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과 이영남 장군이 전략을 모의했다고 한다

유적지명
사천선진리왜성(泗川船津里倭城)
주소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402외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274호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樓)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

유적지명
옥포대첩기념공원
주소
경남 거제시 옥포동2동 산1
지정번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며 그의 우국충정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고자 높이 30m의 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팔각정, 유물전시관 등을 갖춘 옥포대첩기념공원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유적지명
당포승첩기념비
주소
산양읍 삼덕리
지정번호
 
왜선이 당포(唐浦)에 정박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충무공 곧 그곳으로 달려갔다.

당포선창에는 일본수군장 가메이(龜井玆矩)와 구루시마(來島通元)가 인솔하는 대선 9척, 중·소선 12척이 정박하고 있었으며, 일본수군들은 성 안팎에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다 조선수군을 보고 발포하였으나 거북선을 앞세운 충무공 이순신 맹렬한 공격으로 대패하고 왜장 구루시마가 전사하였다

유적지명
충무공공덕비
주소
 
지정번호
 

유적지명
남망산공원이충무공동상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
지정번호
 
남망산 꼭대기에 올라 공원 안을 한차례 둘러 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바다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눈에 띈다.

어떤이는 공의 다른 동상에 비해서 작고 초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동상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렇고 1953년에 세워진 이 동상은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점이 그렇다

유적지명
진해시이충무공동상
주소
경상남도 진해시
지정번호
 
1952년 4월 13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조각가 윤효중이 조각)이 제막됨

유적지명
용두산공원(釜山龍頭山公園) 이충무공동상
주소
부산시 중구 용두산
지정번호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용두산에 신사를 세우고 산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였으나 광복 뒤 화재로 인하여 모두 소실되었다.

1955년 공원이 다시 조성되어 우남공원(雩南公園)이라 하였으며, 4·19 이후 용두산공원으로 개칭되어 공원 내에 척화비·이충무공동상·충혼탑·4·19의거기념탑·국민교육헌장비 등이 세워졌다

유적지명
동린각 (東麟閣)
주소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281-5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77호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과 김완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건물로 원래는 자양면 노항동에 세웠으나, 정조 9년(1785)에 불타서 정조 11년(1787)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한 것을 1960년 성곡동으로 옮겨 지으면서 수리하였다.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유적지명
25의용단 (25義勇壇)
주소
부산 수영구 수영동 362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12호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지키며 왜적과 장렬히 싸우다 순절한 25명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제단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수사로 있던 박홍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 때 수병(守兵)과 성민(城民) 25인이 성문 밖의 선서바위에 모여 피로써 맹세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적을 상대로 7년간 대항하였다.

이러한 사연은 광해군 원년(1609) 지방민들의 청원으로 알려지게 되어, 동래부사 이안눌이 이 때의 일들을 모아『정방록』을 만들고, 이들의 집 문에 ‘의용(義勇)’이라는 두 글자를 써붙여 그 뜻을 기리도록 하였다.

순조 때에는 동래부사 오한원이 이들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시키고 글을 지어 포상하였다

유적지명
이안눌시비
주소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해운대
지정번호
 
해운대 바닷가엔 이안눌이 최치원을 생각하며 지은 한시 ‘해운대에 올라’가 새겨진 시비가 해운대구청에 의해 96년 세워졌다

유적지명
매학정일원(梅鶴亭一圓)
주소
경북 구미시 고아면 예강리 257-2
지정번호
도기념물 16호
매학정은 초성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의 유적이다.

황기로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서예를 즐겼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버리고 은둔하면서 학문에 임했다고 한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의 명필가였다.

중종 28년(1533)에 처음 지어진 이곳은 본래 황기로의 할아버지인 상정공 황필의 휴양지였으나,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다시 짓고 매학정이라 하여 서재로 사용하였다.

뒤에 그의의 사위인 옥산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때와 철종 13년(1862)의 2차례에 걸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70년 전면 보수하였다

유적지명
무동서원
주소
경북 선산군
지정번호
 
 

유적지명
구천서원
주소
의성군 구천면 위성2리 (고체비 마을안)
지정번호
 
1721년(景宗-辛丑)에 세워진 이 서원은 1868년(고종5 -무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서 뜯어 없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구천서원 육선생 매판소(龜川書院六先生埋版所)라는 작은 비석만이 남아있다.

구천서원에는 박의중(朴宜中) 박서생(朴瑞生) 김효정(金孝貞) 정휘(鄭輝) 옥산이우(李瑀) 기용한(張龍翰) 등 6분의 선현이 모셔져 있다

유적지명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
주소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295-1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61호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제말(諸沫)과 그의 조카인 제홍록(諸弘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성주목사로 있던 제말은 의병을 모아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제홍록과 함께 전사하였다.

선조는 그의 공을 치하하여 병조판서로 벼슬을 높이고 이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을 조각한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정조 16년(1792)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서유린이 글을 짓고 이병모가 글씨를 썼으며, 조윤정이 비의 제목을 새겼다

유적지명
귀래정(歸來亭)
주소
경북 안동시 정상동 777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17호
귀래정은 이굉(1414∼1516)이 조선 중종 8년(1513)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온 후 지은 정자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글의 뜻과 너무나 닮아 그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이굉은 25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권력 다툼에 걸려들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귀래정은 앞면 2칸·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는 이현보·이우·이식·윤훤 등 30여명의 시를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