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이씨종보 영인본 간행

대종회에서는 종회창립 50주년을 기념하..

   
 
 
전라지역 유적지

유적지명
주천서원 (朱川書院)
주소
전북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139-3, -8, -11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142호
주자를 중심으로 여대림·주잠·이황·이이·김충림·김중정 등 7인(人)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1924년 광산 김씨 문중 사당으로 처음 짓고 ‘주천사’라 하였다.

1975년 성균관장의 인증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은 홍살문, 외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 15일 제사지내고 있다

유적지명
만취정(晩翠亭)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 234
지정번호
전북유형문화재 제106호
만취정은 팔도암행어사(八道暗行御史)를 지냈고 율곡(栗谷) 이이(李耳;1536∼1584)와도 교의(交誼)가 두터웠던 만취정(晩翠亭) 김위(金偉;1532∼1595)가 홍문관 부교리 및 예문관에 오르면서 1572년(선조 5)에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학당으로 지은 정자이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는데, 1837년(헌종 3)에 마지막으로 중수되었으며, 1984년에는 석축공사와 함께 전체적으로 해체 복원되었다.

정자 안에는 이이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 등의 시판(詩板)이 소장되어 있다

유적지명
죽림서원
주소
 
지정번호
 
 

유적지명
침괘정
주소
 
지정번호
 

유적지명
묘당도이충무공유적 (廟堂島李忠武公遺蹟)
주소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산58
지정번호
사적 114호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선조 31년(1598)에 이순신이 약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고, 그 해 7월에 명나라 장수 진린이 약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 있던 이곳 묘당도에 진을 치면서 두 나라의 군사가 힘을 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7개월간 이곳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군 본부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충무사가 있고, 보호하는 절의 의미를 띤 옥천사가 나란히 있다.

충무사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운장을 제사지내어 장병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관왕묘에서 유래한다.

옥천사는 현종 7년(1666)에 처음 지어졌는데, 관왕묘를 보수공사하면서 그 옆에 수호와 제사를 맡게 하기 위해 암자 하나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관왕상과 위패·각종 유물들이 바다에 던져졌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가까운 백운사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광복 후에는 관왕묘가 있던 자리에 충무사를 짓고, 이충무공을 모시게 되었다

유적지명
이충무공진뱀이유지(李忠武公陳뱀이유지)
주소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16호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진뱀이유지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키던 곳이다.

장군이 두번째로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장을 받은 후 군사들을 훈련시켰다고 전하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진뱀이’라고 부르고 있다.

1975년 장군의 호국정신과 얼을 되살리기 위해 높이 4m, 너비 1.1m의 유적비를 세워 보존하고 있다

유적지명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주소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186-7
지정번호
보물 503호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이곳은 옛 조선시대의 우수영(右水營)이며, 강 건너 바로 앞이 진도를 바라보는 해남의 남쪽 끝 해안지역이다.

일제시대에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1947년에 다시 옮겨 세웠다.

이 석비는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몸돌을 꽂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을 장식한 머릿돌을 얹은 형태이다.

비문에는 선조 30년(1597) 이순신장군이 진도 벽파정에 진을 설치하고 우수영과 진도 사이 바다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함대를 무찌른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문은 1686년에 쓰여졌으나 비가 세워진 것은 2년 뒤인 1688년으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건립하였다

유적지명
좌수영대첩비(左水營大捷碑)
주소
전남 여수시 고소동 620
지정번호
보물 571호
충무공 이순신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와 함께 일제의 박해로 1942년 서울로 운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광복 이후 해남지역 유지들의 수소문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 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유적지명
고하도이충무공유적 (高下島李忠武公遺蹟)
주소
전남 목포시 달동 230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10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인 조선 선조 30년(1597) 10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 머물면서 군량미 및 군수물자를 모아 전쟁에 대비하던 곳이다.

장군은 이곳에 돌로 남·서 길이 1㎞, 높이 2m, 폭 1m의 성을 쌓아 적의 배를 구별하고,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오가는 배들에게 1∼3석의 식량을 내어 놓고 통행첩을 받아가도록 하여 열흘만에 일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무기와 배를 만들며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유적지명
타루비 (墮淚碑)
주소
전남 여수시 고소동 620
지정번호
보물 1288호
조선 중기의 명장인 이순신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우(羊祐)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릿돌은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비문은 ‘타루비’라는 비의 명칭을 앞면에 크게 새기고, 그 아래로 명칭을 붙이게 된 연유와 비를 세운 시기 등을 적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6년 후인 선조 36년(1603)에 이 비를 세워두었다

유적지명
여수충민사 (麗水忠愍祠)
주소
전남 여수시 덕충동 1808외
지정번호
사적 381호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임진왜란 때 목포, 노량, 당포, 한산도, 부산포, 명량 해전에서 왜적을 무찔러 우리의 바다를 지켰고, 선조 31년(1598) 노량에서 도망가는 왜적을 무찌르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글에도 재주가 있어 『난중일기』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전쟁터에서 읊은 시조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좋은 작품을 손꼽히고 있다

유적지명
여천선소유적 (麗川船所遺蹟)
주소
전남 여수시 시전동 708외
지정번호
사적 392호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가막만의 가장 북쪽에 조선소가 있으며 조선소의 바다 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조선소의 방패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먼 바다에서 보면 육지처럼 보이고, 가까이 봐도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아보기 어려워 중요한 해군 군사 방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지명
고흥발포만호성(高興鉢浦萬戶城)
주소
전남 고흥군 도화면 내발리 968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27호
발포만호는 조선 선조 13년(1580)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만호(萬戶)로 부임하여 18개월간 재임하였던 곳으로, 여천선소 유적과 함께 임진왜란 때 좌수영 산하의 수군기지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다

유적지명
강진금강사(康津錦江祠)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파리 13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91호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1545∼1598) 장군과 그의 휘하에서 활약한 김억추(1548∼1618)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의 성웅(聖雄)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분이다.

김억추 장군은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방어사로 진주에서 열린 이순신의 작전회의에 참여하여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끄는데 커다란 공을 세워 이후에 경상좌병사, 제주목사가 되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대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사당 입구 정원에는 두 분의 동상이 서 있으며 해마다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인 4월 28일 청주 김씨의 후손들이 모여 두 분의 덕행과 충의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유적지명
여수석인 (麗水石人)
주소
전남 여수시 군자동 472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33호
여수진남관(국보 제304호) 뜰안에 서 있는 것으로, 돌로 만든 사람의 모습이다.

여수는 임진왜란 때 해전의 격전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전라좌수영으로 있던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그와 인연이 깊은 유물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드느라 한창일 때 왜구의 공격이 심하자 이를 막기 위해 7개의 석인(돌사람)을 만들어 사람처럼 세워 놓았다

유적지명
충무사 (忠武祠)
주소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산28-1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48호
임진왜란 때 공이 컸던 충무공 이순신과 정운, 송희립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강포·한산도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 때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노량진에서 순절하였다.

충장 정운(1543∼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선조 3년(1570)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옥포·당포·한산도 등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송희립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운 장군의 군관으로서 영남지역에 원병파견을 주장하였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유적지명
반계사(盤谿祠)
주소
전남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 339
지정번호
 
반계사는 숙종 40년(1714)에 영광 정씨 문중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것으로,영광 정씨의 정인걸, 정경달, 정명설, 정남일 네 사람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임영립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고종 5년(1868) 훼손 되었던 것을 1957년 지금의 자리에 강당을 새로 짓고, 1959년에 탑을 세워 사우로서의 기능을 대신케 하였다

유적지명
고소대
주소
여수시 고소동 620번지
지정번호
 
여수팔경 중 하나로 수군훈련을 독려하던 곳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작전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린곳이며 특히 군령을 어긴 황옥천의 목을 베어 군율을 세운곳으로 유명하다.

현 고소동의 비각자리에 있었는데 그다지 큰대는 아니었으나 남쪽바다를 조망할수 있었다.

1845년에 절도사 이연희가 비상시에 대비하여 창염, 목단을 지하에 묻어둔 곳인데 후일 채토공사때 많이 발굴 되었다.

또한 고소대에는 이충무공 사후 부하들이 공의 덕을 기르기 위해 직접 세운 타루비(보물 제1288호)와 공의 전공을 기록한 좌수영대첩비(보물 제 571호)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유적지명
이충무공자당기거지
주소
여수시 웅천동 송현마을 1420번지
지정번호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모친 변씨부인이 고음천(古音川) 송현마을에서 5년간(1592-1597) 임진왜란을 피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변씨부인이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는 이충무공 막하에 정대수 라는 수군이 효자라 이름이 나있어 이를 확인하고 모친을 이곳에 머물게 하여 정대수모친과 함께 임란을 피할 수 있게하였다.

여수 본영에서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며 해전 출전시에도 틈이 있을 때 마다 문안을 드린 것이 5년이 넘었다.

모친이 사용하시던 유물(솥, 다듬이, 절구통, 맷돌), 선조 병기의 인수인계서인 반열책도 남아있다.

1973년 12월 여천군에서 변씨부인 유허비를 세우고 1990년 여천시에서 이충무공 사오비를 세웠다.

면적은 1226㎡이고 약 383평이다

유적지명
유애사(遺愛祠)
주소
전북 정읍시 과교동 344-1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18호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을 모신 사당이다.

이순신은 선조 22년(1589) 2월에 이곳 정읍현감으로 부임했다가 2년 후 전라좌수사가 되자 이 지방 유림들이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뜻에서 사당을 세우고 유애사라 하였다.

순조 24년(1824)에는 집의공 유희진을, 철종 5년(1854)에는 주부공 유춘필을 함께 모셨다

유적지명
충렬사
주소
전북 정읍시 수성동 614-3
지정번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이다.

이순신 장 군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국가와 민족이 위태로울 때, 거북선을 만들어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하는 큰공을 세운, 한국의 가장 위대한 해군 영웅이다.

정읍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구미산 중턱에 위치하며, 이순신 장군이 1589년 정읍현감으로 있다가 1591년 전라좌수사로 이임했는데, 그가 이곳 현감으로 있을 때의 덕을 추모하고 그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에 매년 제사를 지낸다

유적지명
무광사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513번지
지정번호
 
고 춘담 최병채 선생께서 우리 국민의 충무정신(忠武精神) 함양을 위하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주벽으로 임진왜란 때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드신 이 고장 출신 여섯분의 선열을 함께 모신 무광사를 1957년 9월 23일 건립하고 이충무공 탄신일인 4월28일에는 거시적(擧市的)으로 춘향제를, 기일인 12월 16일에는 추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유적지명
월산사우
주소
전라남도 함평군
지정번호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우다

유적지명
돌산 유적기념
주소
전남 여수시 돌산도
지정번호
 
돌산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보면 거북선 모형이 있는데, 이 거북선은 각종고증을 참고로 본 영구선과 똑같은 실물크기로 건조한 것이다.

선내 구조는 2층으로 단층은 당시 병사들이 전투하는 모습을 인형 130개로 재현시켰고, 전투장비로서는 현자표, 천자표등 14문을 복제 배치하고, 하층 24칸의 각 선실에는 병사들의 생활상을 인형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선체의 길이 37m, 높이 6.8m, 총톤수 150톤, 탑승인원 130~150명 규모인 이 거북선의 개판 위에는 철못을 박아 적의 발붙임을 못하게 하고 선내에서는 밖을 내다볼수 있어도 밖에서는 선내를 볼 수 없게 만들어졌다.

또한 16본의 노와 두개의 돛을 겸용하고 선두에 있는 용머리에는 유황염초를 태워 연기를 뿜어 적을 혼란케 한 우수한 성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충무공의 구국의 얼을 재 조명함과 아울러 오늘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크게 활용하고 있다

유적지명
여수이봉상선정송덕비
주소
전남 여수시
지정번호
 
이봉상 수사의 선정, 빈민구제, 무휼군졸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5대 후손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유적지명
물염정
주소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373
지정번호
 
물염정은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청형이다.

중종, 명종대에 성균관 전적 및 구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송씨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이다.

훗일 외손 금성나씨 나무송(羅茂松) 나무춘(羅茂春)형제에게 물려주었다.

정내에는 김인후(金麟厚) 이식(李植)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등의 시문(時文)과 물염정의 양여사실을 수록한 고문서 형태의 현판이 있어 이채롭다.

28개의 현판이 있다

유적지명
호가정(浩歌亭)
주소
광주 광산구 본덕동 1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14호
호가정은 조선시대에 설강 유사(1502∼1571)가 지은 정자로, 호가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 소강절이 말한 ‘호가지의’에서 따온 것이다.

정자 안쪽에는 ‘호가정’이라 새긴 현판을 비롯하여 이안눌등이 새겨 놓은 편액들이 걸려 있다

유적지명
부용정(芙蓉亭)
주소
광주 남구 칠석동 129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13호
김문발(1359∼1418)이 지은 정자로 연꽃을 꽃중의 군자라고 칭송하던 북송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담긴 뜻을 취하여 이름을 지었다.

건물은 앞면·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4면 모두 개방되어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부용정 현판과 양응정·고경명·이안눌·박제형 등 후대 이름난 선비들의 글을 새긴 액자가 많이 걸려 있다.

정자 주변에는 은행나무와 부용정의 내력을 쓴 부용정 석비가 있다

유적지명
귀산서원
주소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지정번호
 
 

유적지명
용안영당
주소
 
지정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