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이씨종보 영인본 간행

대종회에서는 종회창립 50주년을 기념하..

   
 
 
서울/경기지역 유적지

유적지명
이이선생 신도비
주소
법원읍 동문리 산 5-1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6호
이이선생신도비(李珥先生 神道碑)는 자운서원 경내 좌측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데 조선 중기 대학자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이다.

이 신도비는 율곡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1631년(인조 9) 4월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이항복(李恒福)이 짓고 신익성(申翊聖)이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재질은 대리석으로 앞뒷면에 걸쳐 각자(刻字)되어 있는데 앞면에 몇 군데의 총탄 흔적이 있다.

유적지명
자운서원 묘정비
주소
법원읍 동문리 산 5-1
지정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는 자운서원의 내삼문 밖 우측에 위치해 있다.

이 비는 자운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한편 자운서원의 건립내 력을 기록하고 있다.

비의 하단은 4개의 두꺼운 판석으로 지대석(地臺石)을 만들고 그 위에 사각의 비좌(碑座)를 놓았는데 높 이 77cm의 비좌에는 윗면에 복련문(覆蓮文)이 새겨져 있으며 측면에는 연주문(蓮珠文)과 괴운문(怪雲文) 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예서체로 되어있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이 썼다.

비의 상단에는 김수항(金壽恒)이 쓴 『紫雲書院 廟庭碑』라는 전액(篆額-머리글)이 쓰여져 있으며 비문 끝의 "崇禎五十六年癸亥"(숭정56년계해)라는 연기로 보아 비의 건립연대가 1683년(숙종 9)임을 알 수 있다.

유적지명
이이선생묘
주소
법원읍 동문리 산 5-1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5호
이곳은 조선전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묘이다.

자운서원 내에 위치하며 이 묘역을 중심으로 신사임당 묘를 비롯한 가족 묘 13기가 인근에 함께 조성되어 있다.

유적지명
자운서원
주소
법원읍 동문리 산 5-1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45호
이 서원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학 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들로 인하여 창건되었다.

효종(孝宗)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숙종(肅宗) 39년(17B)에 그의 후학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2∼1695) 두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인 고종(高宗) 5년(1868)에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빈터에 묘정비(廟庭碑)만 남아 있다가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 을 받아 복원하였고 1973년 경내 주변을 정화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사당(祠堂)과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높은 대지위에 세워졌다.

최근에 사당 전면에 강당과 동재, 서재, 협문, 외삼문을 신축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년 음력 8월 중정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유적지명
파산서원 (坡山書院)
주소
경기 파주시 파평면 늘노리 235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10호
조선 중기 학자인 청송 성수침(1493∼1563)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1535∼1598), 형제 절효공 성수종(1495∼1533) 및 휴암 백인걸(1497∼1579)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서원이다.

조선 선조 원년(1568)에 율곡 이이 등 파주지역 유생들이 세웠고, 효종 원년(1650) 나라에서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후에 복구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불탔고, 1966년 서원의 사당만을 복원하게 되었다.

사당 주위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고, 정면 가운데에 솟을삼문을 두었다

유적지명
광화문이충무공동상
주소
서울시 광화문로
지정번호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세운 충무공 동상은 조각가 고 김세중씨의 작품으로 좌대 높이 12m에 동상 높이 9m다.

유적지명
李景閔 墓 (이경민 묘)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37-1
지정번호
 
내곡-분당간 도시고속화도로와 인접하여 고등동 고산화훼단지에 있는 에덴농장 뒷편 덕수이씨 선영의 나지막한 구릉에 東南向(동남향)하여 配贈貞敬夫人全州李氏(배증정경부인전주이씨) 와의 合葬墓(합장묘)이다.

유적지명
李景顔 墓 (이경안 묘)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37-1
지정번호
 
고등동 父(부)이통의 묘역 하단에 東南向(동남향)하여 配贈淑夫人彦陽金氏(배증숙부인언양김씨) 와의 合葬墓(합장묘)이다.

유적지명
이경증 묘 및 신도비
주소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산68-16,21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46호
이경증(선조 28년. 1595~인조 26년. 1648) 자는 여성 호는 미강 또는 송음으로, 조선 인조대 문신이다.

유적지명
李景憲 墓(이경헌 묘)
주소
수정구 상적동 산24-1
지정번호
 
상적동 대왕저수지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구릉에 南西向(남서향)하여 配貞夫人坡平尹氏(배정부인파평윤씨) 와의 合葬墓(합장묘)이다.

유적지명
침괘정 (枕戈亭)
주소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591-1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5호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다시 지은 후에 침괘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백제 온조왕의 궁궐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침괘정의 오른쪽에는 무기를 보관하던 무기고나 무기를 만들던 무기제작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적지명
수어장대 (守禦將臺)
주소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1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1호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유적지명
동악(東岳)선생시단
주소
 
지정번호
 
동악이란 글씨는 조선 선조 때 시인이자 예조판서를 역임한 이안눌(1571~1637)의 호였다.

이안눌이 젊었을 때 소실을 두게 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이안눌이 정월 대보름날 장가를 들었는데 친구들과 수표교의 다리밟기에 어울렸다가 술에 취해 다리 부근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안눌이 새벽이 되어 깨어보니 자기 신방이 아니었다. 소스라쳐 놀란 이안눌은 옆의 신부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뜬 신부도 이안눌을 보고는 크게 놀라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이 일은 신혼 사흘밖에 되지 않은 신부집에서 밤늦도록 신랑이 들어오지 않자 하인들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수표교 부근에서 만취해 쓰러진 이안눌을 이집 신랑인 줄 알고 업고 들어와 신방에 재운 데에서 일어났다. 이안눌은 당황하여 신부에게 본의 아닌 실수를 저지른 것을 사과하였다. 그러자 신부는 체념하듯 자신은 마땅히 죽어야 하겠으나 무남독녀이므로 어쩔 수 없으니 소실로 맞아 주길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이안눌은 아직 엄친 슬하에 과거에 오르지도 못한 주제에 두 여인을 거느릴 수 없다고 거절했으나 신부의 간청에 못 이겨 신부를 데리고 그 집을 몰래 빠져나왔다.

유적지명
이명달묘
주소
인천광역시 오류동 산 4번지
지정번호
 
통정대부 인천도호부사 덕수이고 명달지묘, 배증숙 부인 예천권씨 부좌의 묘비이다.

주위에 오류동 효자비와 옆에 번개 인성교육대가 옛날 향교터 였고 이명달 묘 아래에 옛 수주 청사자리가 있다.

유적지명
기천서원
주소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 산26-1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75호
조선 중종에서 효종까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 회재 이언적, 치재 홍인우, 오리 이원익, 수몽 정염, 택당 이식, 나재 홍명구, 기천 홍명하 등 여덟 분의 위패가 봉안된 서원이다.

기천서원은 원래 선조 13년(1580)에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마암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에 소실하고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인조 3년(1625)에 중건하여 사액받은 서원이다.

그 후 고종 8년 신미년(1871)에 폐사되고 65년 후인 1936년 복원, 모현사(慕賢祠)로 개칭되었다가 회철되고 1978년 중건되어 옛터에 사당이 복원되었으며 최근에는 부속건물들도 복원되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유적지명
화석정
주소
파평면 율곡리 산 100-1
지정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율곡 이이(李珥)선생의 본향인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변에 위치한 화석정(花石亭)은 원래 고려말 대유학자 인 길재(吉再)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문헌기록은 없다.

그후 세종 25년(1443)에 율곡선생의 5대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세운 것을 성종 (成宗)9년(1478) 선생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이숙함(李叔咸)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때 불타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있는 것을 현종(顯宗)14년(1673)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李厚址)·이후방(李厚坊)이 다시세웠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 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 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유적지명
이병모 묘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복포리
지정번호
 
양평군 양서면 복포리에 있다.문익공(휘 병모, 1742~1806)의 자는 이칙, 호는 정수재이다.

문정공 택당(휘 식)의 셋째아들인 문충공 외재(휘 단하)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증 영의정(휘 연)이다.

1773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1798년 좌의정을 거쳐 1799년 영의정이 된 후 5차례나 중임 하였다.

1806년 9월11일 별세하니 향년 65세이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문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배위 정경부인 청송심씨와 합장하였다.

유적지명
택풍당
주소
경기도 양동면 쌍학리 314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16호
양평군 양동면 쌍학2리(백아곡) 314번지에 있는 건물이다.

1619년 문정공 택당(휘 식)이 백아곡 선영 아래 건축하여 당호를 택풍당 이라고 명명하고, 관직에 나가지 않을때 세거(世居)하며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건물 높이는 12척이며 가운데 한칸은 온돌방으로 만들고 정면과 측면에 툇마루를 만들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에 나무껍질을 덮고 칡으로 얽어 매였다.

당시에는 건물 동쪽에 두 선묘(조부 휘 섭, 부 휘 안성)를 조석(朝夕)으로 우러러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선묘 부근에 본인의 묘(휘 식), 및 장남(휘 면하), 삼남(휘단하)의 묘소가 있는 덕수이씨 세장산이 되었다.

그간 여러차례 보수를 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문정공 종중에서 1997년 8월 19일 한식 기와와 대문을 교체하고 담장을 중건 하였다. 양평군 향토 유적 제16호로 지정되어있다.

유적지명
이식의 묘
주소
경기도 양동면 쌍학리 314
지정번호
 
택풍당 앞 백악곡에 있다.

유적지명
李深 墓 (이심의 묘)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5-1
지정번호
 
河源君(하원군)이심 묘역은 고등동 등자리마을 의번의 묘역 못미쳐 소로 우측의 구릉 중턱에 東南向(동남향)하고 있다.

원형의 雙墳(쌍분)은 각 봉분마다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봉분 높이 130㎝, 직경 340㎝이다.

유적지명
이완 정려각
주소
 
지정번호
향토유적 51호
이완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조카이다.

선조25년 임진왜란 당시 숙부인 이순신장군 휘하로 종군하여 선조31년 노량해전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전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아군을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의주부윤으로 있던 인조5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압록강을 건너 내습해온 적군을 맞아 분전하다가 대세가 기울자 병기고에 불을 지른후 사춘동생인 이신과 함께 분사 하였다.

숙종18년 강민공으로 시호되고 정려문이 내려졌으며 숙종 30년 용인시 고기동(손기마을)에 정문을 세워 정려를 표하였다.

2001년 4월 18일 이완의 묘 및 정려각은 용인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본 정려각은 고기동 167번지의 후손 가옥내에 있었으나 2003.11월 덕수이씨강민공종회에서 고기동 산20-1번지로 이전 복원하였다

유적지명
李우 墓(이우 묘) 및 묘갈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28-2
지정번호
 
이우 묘역은 고등동 대왕저수지 못미쳐 도로 오른쪽의 성용농원 뒤 구릉 말단에 東南向(동남향)하며, 配贈貞夫人全州崔氏(배증정부인전주최씨) 와 配贈貞夫人光山金氏(배증정부인광산김씨) 의 원형 合葬墓(합장묘) 이다.

묘역은 최근까지 실전되어 소재를 알 수 없었으나, 1994년 문중의 노력으로 확인되어 묘역을 덮고 있던 아카시아 숲을 쳐내고 사초를 하였다.

원형의 봉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높이는 130㎝, 직경이 4m이다.

묘역에는 봉분 중앙에 혼유석·상석·4각 향로석과 상석 좌측에 금관조복형의 소형 문인석·묘표 ·8각 망주석과, 우측에 문인석·망주석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유적지명
이여 묘(李여 墓)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산 92
지정번호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산소말에 있다.

문경공(휘 여, 1645~1718)의 자는 치보, 호는 수곡이다.

문정공 택당(휘 식)의 둘째아들인 송노당공(휘 신하)의 둘째아들이다.

1680년(숙종6)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710년 영의정을 역임 하였다.

1712년 덕수이씨 초간 세보를 주관하여 간행 하였으며, 1718년 1월 20일 별세하니 수 74세이다.

문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배위 정경부인 풍천임씨와 합장하였다.

유적지명
李宜蕃 墓 (이의번 묘 )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6-1
지정번호
 
이의번은 문신. 본관은 德水(덕수) . 이함의 父(부)로 豊城君(풍성군)이다.

묘역은 고등동 등자리마을 小溜池(소류지)와 인접한 구릉 중턱에 東向(동향)하며 配贈貞夫人安東權氏(배증정부인안동권씨) 와의 원형 合葬墓(합장묘)이다.

묘역은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 내로 진입하면 멀리서도 그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적지명
의병장 이춘영 묘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 97-2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 18 호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목곡)에 있다.

의병장 괴은공(휘 춘영,1868~1896)의 자는 우삼, 호는 괴은이면 문정공 택당(휘 식)의 9대손으로 도사공(휘 민화)의 둘째아들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안승우 등과 400여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제천, 단양 등지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고, 1896년 1월 13일 충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배위 연안김씨와 합장하였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양평군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적지명
李通 墓 (이통 묘)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37-1
지정번호
 
이통(1556∼1620)은 조선중기의 문신. 자는 天衢(천구) 공은 천성과 자질이 강직하고 결백하였으며 목소리는 큰 종소리와도 같았다.

9세에 생부가 병으로 돌아가게 되자 율곡 문하로 들어가 학업을 이었다.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다시 明經科(명경과) 의 여러 경전에 모두 합격하였다.

얼마 있다 慶安道察訪(경안도찰방) 에 임명되어 내직을 여러 번 거친 후, 外職(외직) 으로 나가 高山(고산) 현감과 翕谷(흡곡) 현령을 지냈는데, 가는 곳마다 백성을 잘 다스려 聲望(성망)이 높았다.

이후 平昌郡守(평창군수)에 승진하고 평북 順川郡守(순천군수)로 옮겼다가 光海君(광해군)의 집권시 永昌大君의 賜死(영창대군의 사사)를 듣게 되자 세상을 피하게 된다.

패랭이를 쓰고 황소를 타고 들밭을 노닐기도 하고 거문고를 타거나 詩歌(시가) 를 읊는 등 회포에 붙이기도 하면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유적지명
李函 墓(이함 묘) 및 神道碑(신도비)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13
지정번호
 
이함(1470∼1534)은 조선초기의 무신. 字(자)는 子實(자실). 본관은 德水(덕수) . 이의번의 5子(자)중 3子(자)이다.

공은 나면서 재주와 슬기가 남보다 달랐다. 장성하면서 얼굴 생김새가 魁偉(괴위)하고 氣局(기괴)과 도량이 깊고 침착하였다. 용맹스러운 힘은 남보다 뛰어났고 활쏘는 재주가 극히 절묘하여 20세에 武才(무재)로 뽑혀서 궁중을 숙직하며 지키는 장교가 되었다.

1491년(성종 22) 오랑캐가 北邊(북변)을 침범하자 左議政都元帥 許琮(좌의정도원수 허종) 의 휘하장교로 종군하여 정벌하는데 공이 있었다.

回軍(회군)후 그 공으로 修義副尉(수의부위) 와 定略將軍(정략장군) 에 제수되었고, 1505년(연산군 11) 建功將軍(건공장군) 에 올랐다. 中宗反正(중종반정) (1506)시 공을 세워 靖國功臣(정국공신) 이 되고 이 일로 2계급 특진하여 折衝將軍절충장군) 에 제수되었다.

1507년(중종 2) 嘉善(가선) 에 오르고 다음 해 嘉善大夫朔州府使兼兵馬僉節制使 海豊君(가선대부삭주부사겸병마첨절제사 해풍군) 에 봉해졌다.

이후로 네 고을을 역임하였는데 모두 선정을 베풀어서 명성과 치적이 높았다.

1529년(중종 24) 聖節使(성절사) 로 明(명)에 다녀왔으며, 귀국 후에는 海豊君 奉朝賀(해풍군 봉조하) 로 임명되었다. 1532년(중종 27) 順天府使(순천부사) 재임 중 1534년(중종 29) 병으로 관사에서 壽(수)65세로 卒(졸)하였다.

그의 부음에 중종은 예조좌랑 金璣(김기)에게 제문을 보내어 애도를 표하였다.

유적지명
李  墓 (이혜 묘)
주소
수정구 고등동 산5-1
지정번호
 
이혜(1635∼1679)는 眉江公 李景曾(미강공 이경증 )의 3자. 字(자)는 次山(차산). 호는 玄圃(현포) .

1654년 진사 장원을 하고 1660년에 增廣文科(증광문과) 에 급제하여 벼슬은 대사간에 이르렀으며 知製敎(지제교)를 겸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父 眉江公(부 미강공)의 행장을 찬하기도 하였다.

유적지명
이희동 효자정문
주소
기흥읍 영덕리 덕곡마을
지정번호
 
효자 이희동의 본관은 덕수로 자(字)는 필만이며 어모장군 이치의 아들로 현종 계묘년(1663)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칭송을 들으면서 자라났다. 모친이 위독하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간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밤마다 목욕재계하고 산천에 기도하여 백일이 되던 날 밤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묘방을 알려주었으니 이를 두고 효심이 극진하여 하늘이 보살핌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모친의 간병에 쓸 약초는 여름에는 나는 산야초였기로 엄동 설한에 구할 방도가 없었으나 그는 설중에 이산 저산 약초를 찾아 헤매던 중 지쳐서 혼절하였다가 깨어났을 때 그가 쓰러져있던 자리에 약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희동은 이를 취하여 모친의 환우를 치유케 하였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천우신조라 하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천수를 다하여 모친이 하세하니 슬퍼함이 극에 달하였다 부친의 묘에 합장한 후 3년 동안 하루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묘하에 꿇어 엎드려서 시묘살이를 하였다. 3년 탈상 후 집에 돌아왔을때에는 양쪽 무릎이 빠져있었다. 이와 같은 효행이 이웃과 마을에 널리 전파되어 마침내 상께서 전문하시고 명하여 효자로 표정하였으며 참봉의 직을 내렸으나 무릎이 빠져 있었으므로 이를 사양하였다고 전한다.

유적지명
방학동 하마비
주소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지정번호
 
도봉구 방학도에는 하마들(下馬野)이 있습니다. 이곳은 예전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 하여 생겨난 지명입니다. 하마비는 대개 비석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새겨서 이곳에서는 누구나 말에서 내리도록 표시한 비입니다. 그 이유는 왕을 비롯하여 훌륭한 어른과 관련이 있는 곳에 하마비를 세워 그 어른에 대해 예의를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마들 뒷산에는 덕수 이씨네 묘가 많은데, 조선시대 3대 정승이 살았다고 합니다. 세도가 상당하여 가족이나 일가 친척은 물론 그 집에서 부리는 남녀 하인들도 위세가 당당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 집앞에서는 누구나 가릴 것 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리게 되었고, 따라서 '하마(下馬)'라는 지명이 생긴 것입니다. 당시 이곳에는 밤나무가 아주 많았습니다. 덕수 이씨네 하인은 지게에 이곳 밤나무를 따는데 필요한 긴 장대를 지고 지나가면서 길을 다 차지하여 통행에 불편을 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 "여보시오 이렇게 장대를 지고 가면 어찌하오?"라고 묻거나 따질 것 같으면 그 하인은 "방학리 이정승댁에 빨리 가려고 하오"라고 대답하였고, 상대방이 알아서 피해갔다고 합니다

유적지명
덕수이씨(德水李氏)의 정문(旌門)
주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지정번호
 
방일리에는 자연부락이 이문안(里門內), 음방(陰訪), 양방(陽訪), 평촌(平村)으로 나뉘져 있는데 이문안 은 동강 남언경(東岡南彦經)의 증손 운곡(雪谷), 남노성(南老星)의 묘갈(墓碣 신도비와 같음)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의령 남씨(宜寧南氏)촌락임을 암시 해 준다.그 옛날 영화를 누리던 시절 아흔아흡간의 기와집과 운곡 남노성의 부인 덕수이씨(德水李氏)의 정문(旌門)은 6.25사변으로 인하 살아 지고, 지금은 선대의 묘를 수호하는 묘막만이 쓸쓸히 역사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유적지명
신사임당묘
주소
법원읍 동문리 산 5-1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4호
이곳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어머니이며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인 사임당신 (師任堂申)의 묘이며 남편 이원수(李元秀)와의 합장묘이다.

유적지명
사직공원신사임당동상
주소
 
지정번호